나의 아빠 호해용은 아직 살아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다. 내가 태어나던 날에도 취해있었고, 아마 지금도 취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다. 소주 한 병만 마셔도 취해서 잠들어버린다.
대단한 점은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일상생활은 멀쩡히 해낸다는 거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는 엄마에게 욕을 뒤지게 얻어먹고 본인이 등짝을 후두려 맞는지도 모른 채 잠들곤 했는데,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박박 씻고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하러 갔다. 엄마가 아빠를 아직 데리고 살아주는 이유일 것이다. 술은 징그럽게 마시지만,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빠의 역할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호해용을 알고 있다. 야자가 끝나고 친구들과 교문까지 걸어 나가면, 웬 아저씨 한 명이 자신의 회색 스타렉스 앞에 서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호해용이었다. 아빠는 담배 쩐내가 나는 스타렉스에 친구들을 모조리 태워 집에 데려다줬다. 친구 중 한 명이 아저씨 담배 몸에 안좋아요 라고 말하면 야 임마 그런건 너네 아빠한테나 얘기해 라며 허허 웃어 넘겼다. 학교 앞에서 담배는 좀 아니지 않냐는 나의 타박에도 별 타격은 없었다. 요새는 다 금연 구역이라 담배 피울 데가 없다고 흡연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오히려 나라 욕을 해댔다. 자꾸 뭐라고 하면 이제 데리러 안 온다고도 했지만, 아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게 의무인 것처럼 나를 데리러 왔다. 그 좋아하는 술도 꾹 참다가 나를 집에 데려다 놓고서야 마셨다. 자식 셋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빠는 그렇게 살았다.
아빠는 엄마도 잘 데리고 다녔다. 주말 아침 갑자기 바다에 가고 싶다는 엄마의 요청에도 군말 없이 리모콘을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산에 가고 싶어 하면 산으로 갔고 계곡에 가고 싶어 하면 계곡으로 갔다. 그렇게 멀리 갈 때면 아빠는 스타렉스의 뒷좌석을 평탄화시켜서 놀이방처럼 만들었다. 나와 동생들은 거기서 방방 뛰어놀거나 굴러다니거나 심지어는 의자를 살짝 세워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다. 달리는 차에서는 꽤 위험한 행동들이지만 아빠는 하지 말라는 말 대신 경찰차가 보이면 수구리! 라는 말을 외쳐 우리가 차에 납작 엎드려 숨게 했다. 수구리!를 하면 엄마도 같이 숨어서 좀 웃겼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우면 터널을 지날 때 숨 참기 놀이를 해 조용하게 만들기도 했다. 차에서 우리는 따분할 틈이 없었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아빠는 딱히 뭘 하지는 않았다. 바다에 가면 적당한 횟집을 찾아 거기서 소주를 마셨고, 산에 가면 하라는 등산은 안 하고 산 밑의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만 마셨다. 엄마는 여기까지 와서 꼭 술을 마셔야겠냐고 잔소리를 쏟아부었지만, 나는 회랑 도토리묵이 맛있어서 술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삼십 살이 넘었다. 아빠가 아빠가 됐던 나이도 넘었다. 어른이 되면 아빠를 아부지라고 부를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아빠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직도 제주도에 사는 내가 대전에 갈 때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다. 나를 데리러 오는 건 일도 아닌가보다. 얼마 전 대전에 갔을 때 본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은 할아버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늙어있었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 쩐내와 뒷좌석에 엄마 몰래 숨겨놓은 소주병들이 아빠가 하루 아침에 늙어버리는 데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빠가 죽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하려다가 아빠 곧 죽겠는데? 라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아빠는 어쩔 수 없지 라며 허허 웃었다. 술만 마실 수 있다면 죽음 같은 건 상관없나보다. 새삼 이 남자를 데리고 사는 엄마가 존경스러워졌다. 나였으면 짜증 나서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니까 그런말 까지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나는 그날 저녁 호해용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났다. 아빠와 내가 닮았다는 사실이 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