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 시끄러운 아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반쯤 뜬 눈으로 시계를 보니 아직 여섯 시도 안 됐다. 귀를 틀어막고 ‘터키 사람들은 이 소리를 평생 듣고 사는 건가?’ 생각했다. 아잔은 이슬람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기 위해 내는 일종의 외침인데, 도시 곳곳에 있는 모스크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진다. 외침이라기엔 꽤 길고, 음율이 있어 노래 같기도 하다. 모스크 근처에 숙소를 잡은 바람에 하루의 시작은 늘 아잔과 함께다. 녹음된 목소리를 트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시간마다 사람이 직접 낭송하는 거란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도시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 같다. 아잔을 낭송하는 사람은 본인이 낭송한 아잔에 본인 귀가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손으로 귀를 막는다고 한다. 옆에서 코를 골면서 자고 있던 영선도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는지 부스럭거렸다. 영선은 덜 깬 와중에도 “아후 또 시작이네…” 하며 아잔의 음율을 따라 했다. 터키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또 그걸 주워듣고 엉터리로 따라하는 영선이 웃겼다. 웃다보니 진짜 아잔은 끝나있었다.
비몽사몽인 영선을 뒤로 하고 침실에서 나와 테라스로 향했다. 우리는 ‘카쉬’ 라는 터키 남부에 있는 소도시를 여행 중이다. 말이 도시지, 지중해를 끼고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다. 우리가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까지 이 작은 마을에 온 이유는 따뜻한 날씨 덕에 10월 말까지도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가파른 언덕을 굽이굽이 올라야 나오는 우리의 숙소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테라스에 덩그러니 있는 소파에 앉았다. 얼굴을 향해 내리쬐는 햇살은 내가 앉아 있는 소파만큼이나 푸근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에도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태양 덕분에 좋아진 기분을 느끼며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곳에 사는 고양이 이클리크가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이클리크는 숙소 주인 나즐리가 지어준 이름이다. 어렸을 때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던 고양이라 그렇게 불렀다는데, ‘이클리크’라는 터키어가 ‘separate(분리된)’라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말로 외톨이..쯤 되려나. 사실 이클리크는 내가 편한 발음이다. 알고 보니 나즐리는 ‘아일르마크’라고 부르고 있었고, 영선이는 둘 다 어렵다며 ‘이크에크’라고 불렀다. 내 무릎의 고양이는 자기 이름이 뭐든 상관없다는 듯이 아예 자리를 잡고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그릉거리며 몸을 비비는 이클리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순간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김마요랑 호랑이가 보고 싶어졌다.
잠에서 깬 영선이 기지개를 켜며 테라스로 나왔다. 머리가 산발이 된 걸 보니 잠을 아주 잘 잔 눈치였다. “구웃모오닝 이크에크야 자알잤어? 누나는 잘 잤어. 아 참 너는 여자애지. 우리 집 김마요랑 호랑이는 남자애야. 소개시켜줄까? 너 한국 고양이 본 적 있어? 너 내 말 알아들어? 일루와봐. 누나한테 한 번 와보자. 아니 언니한테. 배고프지 이크에크. 간식줄까? 간식 먹고 싶어? 주세요 해봐. 꽁짜로 주는 게 어딨어. 여기로 좀 와봐바바. 어? 일루 와바바.” 아침부터 말 많은 영선이 귀찮았는지, 이크에.. 아니 이클리크가 무릎에서 내려가 테라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치. 간식 없는 거 아나봐. 오늘은 고양이 간식 꼭 사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했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숙소 근처 해변으로 향했다. 성수기가 지난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선크림을 발랐다. 선크림을 바르면서 본 카쉬의 바다는 제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적당히 일렁거렸다. 우리 근처에는 노부부가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신문지 같은 종이를 펼쳐 스도쿠를 풀고 있는 듯했고, 할머니는 책을 읽고 있었다. 해변에서 스도쿠를 하는 모습이 멋져보여, 다음번에는 나도 바다에서 스도쿠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부부 옆에는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 모습 또한 멋져 보여 내가 흡연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워터푸르프 선크림 다 발랐다!” 바다에서 담배 피우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려는데 영선이 말했다. 그녀는 바다에서 선크림을 바를 때 꼭 ‘워터푸르프 선크림’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게 좀 웃기다. “그냥 선크림이라고 하면 되지 왜 워터푸르프선크림 이라고 해?ㅋㅋ” 내가 놀리듯이 말하니 영선이 코를 파면서 “워터푸르프 선크림이니까”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서 이제 물에 들어가자고 했다. 영선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다로 몸을 던졌다. 시원한 바닷물이 내 몸을 적셨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제주 바다보다 훨씬 맑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헤엄쳐갔다. 뒤돌아보니 영선이 잔뜩 쪼그라든 표정으로 심장 쪽에 물을 묻히고 있었다. “심장부터 적셔야 돼! 안그럼 큰일나!” 영선이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물에 둥둥 떠서 그녀가 얼른 들어오길 기다렸다. 영선은 한발 한발 걸어 발이 겨우 닿는 곳까지 와서야 온몸이 젖었다. 그제서야 쪼그라들었던 영선의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여기 완전 지중해잖아” 영선은 신나게 개구리 헤엄을 치며 우리가 지중해에서 수영 중이라는 걸 열번도 넘게 말했다. 초코우유를 처음 맛본 다섯살짜리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서. 귀여웠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바다에 누웠다. 생전 쓰지도 않는 황홀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루 종일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맥주 두 캔과 과일, 그리고 이클리크에게 줄 간식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노곤한 기분으로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깠다. 어느새 이클리크도 우리 쪽으로 와서 앉아있었다. 영선이는 간식으로 이클리크의 마음을 얻었다. 남의 고양이도 자기 고양이처럼 사랑하는 영선이를 보며,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또, 나와 비슷한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취한 것 같았다.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어깨를 으쓱이며 아침에 들었던 아잔을 또 엉터리로 따라했다. 영선도 제정신은 아닌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홉시밖에 안됐지만, 잠이 쏟아진 우리는 눈을 반쯤 감고 침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