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뛰었다
설날이다. 영실오름에 가려고 했으나 아이젠이 없으면 입산이 불가하다는 글을 읽고 포기하고 그냥 뛰었다.
뛰는 길 곳곳에 어린이 뮤지컬 슈퍼윙스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슈퍼윙스.. 슈퍼윙스.. 생각하다가 스윙스 노래를 틀었다. 얼마 전 스윙스와 식케이의 디스전 어쩌구 하는 영상이 릴스에 떠서 봤었는데, 마침 거기 나온 앨범들이 궁금하던 차였다. 식케이의 K-FLIP과 스윙스의 UPGRADE 5 ..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K-FLIP이 극찬을 받으며 개지린다는 소리를 듣는 반면 UPGRADE 5는 혹평을 듣는다고 했다. 흠. 들어보니 나는 스윙스 앨범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식케이꺼는 무슨 게임 음악 같던데.. 찌지직거리기만 하고.. UPGRADE 5는 스윙스가 랩을 할 때 씨발과 멋진척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았다. 내 취향이 구린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힙합커뮤니티에 끼지 못했다는 것에 안도했다.
스윙스의 노래를 들으며 뛰는데 길가에 버려진 피아노가 보였다. 진짜 떡하니 버려져있었다. 방이 아닌 길에 있는 피아노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다가..(₩넼0-4ㄲㄲㄲㄲㄲㄲㄱ9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앨범을 틀었다. 런닝에 적합한 음악은 아니었으나.. 스윙스의 랩을 들으며 뛰는 나.. 보다는 임윤찬이 연주한 클래식을 뛰는 나.. 가 더 멋져보인달까.. 적어도 임윤찬 앨범을 듣는다고 했을 때 내 취향이 구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나는 사실 스윙스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운데.. 스윙스를 좋아한다고는 죽어도 말 못하겠다.
온갖 생각들을 하며 뛰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지금 내가 저 아줌마보다 느리다는 얘긴가. 예전같았으면 남은 힘을 짜내 다시 앞질러 갔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은 힘도 없이 겨우 다리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뒤에서 본 아주머니 몸매가 너무 탄탄했다. 마라톤 경력 20년에 풀코스도 자주 나가는 분이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나도 나름 좋은 체력을 가지고 곧잘 뛰었었는데.... 이젠 뱃살만 늘고 체력은 바닥을 친다. 당연하다. 나는 요새 운동을 잘 하지 않고 술을 자주 마시며 아줌마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사쩜오키로를 뛰고 집에 왔다. 힘들다. 점심에는 이웃 청년들을 모아 만두를 빚어 먹을 것이다. 맥주도 곁들일 것이다. 뱃살을 늘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