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아무데나 잘 드러눕는다.
드러누우면 지구가 나의 침대
영화 같기도 하고
또 뭐 청춘드라마 같기도
별과 달과 해와 구름 하늘 이런 단어들이 좀 간지럽긴 해도 나에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벤치에 누워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들을 보며 눈을 감으면
들리는 소리들
바람냄새
감은 눈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
눈이 부셔 찡그려도 나는 여전히 드러누워
별 본 기억
1 갑자기 시작된 야간 비상 훈련에 부사관 교육대대 연병장에서 누워발차기를 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말다가.
할 때는 힘들어서 아무것도 안보이고 말 때는 쌔까만 하늘이 보인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300명은 족히 되는 후보생들을 바닥에 눕혀 뭐가 보이냐 묻는다.
멀리서 부모님 얼굴이 보인다고 누가 소리쳤지만.
소대장님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하늘을 보라고 한다. 별이 많다고 했다. 지금을 기억하라고 했던가
그제서야 보이는 쌔까만 하늘에 가득 들어찬 반짝이는 별들.
얼차려를 받다가 말고
저 별이 작을까 내가 작을까 하는 생각.
그저 이렇게 누워있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
일어나면 또 얼차려를 받을텐데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
땀이 줄줄 흘러 내 눈으로 들어와 눈이 짰다
2
밤의 바다 한 가운데는 어둡고 조용하고 짜다.
졸음 가득한 눈으로 기관 전령기를 붙잡고 잠들지 않으려 꾸역꾸역 해보는 끝말잇기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단어들
함교 창문 사이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달이 밝으면 별은 보이지 않는다
끝말잇기는 질려버리고 이상한 넌센스 퀴즈를 시작할 때 쯤이면
조용하고 짠 어둠에 익숙해져
그제서야 보이는 얼굴들
원해서 되었거나 살려고 되었거나 어쩌다 되었거나 어쩔 수 없이 되었거나.
저마다 다른 이유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달빛 하나에 의지해 끝말잇기와 넌센스퀴즈와 각종 테스트들을 하며
NLL 부근에 둥둥 떠 나라를 지키던 이상하고 어둡던 밤들
3
빨간 모자를 쓰면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았다.
요령은 하나도 없고 열정만 가득했던 어느날
새벽 여섯시에 출근했지만 밤 열시까지 퇴근을 못하던 어느날
내가 뭘 잘못한진 모르겠는데 혼내니까 혼이 났던 어느날
빨간색 모자를 눌러 쓰고 뭐라도 된 척 하며
춥고 배고프고 힘든 후보생들을 인솔하던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어느날 밤
군기가 가득 찼는지 그냥 긴장한건지 모를 까까머리 여군들에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고 했었다.
나도 같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었다.
애들이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뭘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별이 많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
퇴근하고도 집에 못갔던 어느 날 밤
4 미국 여행을 갔다 라스베가스에서 캠핑카를 타고 그랜드캐년에 갔다 캠핑카 앞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김치는 없었고 아스파라거스는 있었다 이렇게 느끼한 바베큐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내 함께 나눠 먹었다 바베큐를 준비해 준 캠핑카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아저씨 몰래 여자애들 넷이 몰래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다같이 벤치에 누우니 하늘에 콕콕콕콬콕ㅋ고콕 박혀있는 수많은 별들 이런게 대자연인가 미국 별은 뭔가 다른 느낌이지 않아요? 여기서 이렇게 있는게 말도 안되고 꿈만 같다 는 이야기를 하는데 떨어지는 별똥별 꿈의 완성
5 호진석이 타고 있는 배에서 가족초청행사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다같이 차를 타고 대전에서 동해로 가던 날 내가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는 아빠가 앉고 엄마랑 서영이는 뒤에서 잠들었고. 어렸을 땐 다같이 많이도 놀러다녔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운전을 하는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내가 운전을 하거나 호진석이 하거나 심지어 서영이도 해버리니까 기분이 되게 묘하고 아빠를 아부지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아부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아빠가 운전을 하면 우린 다 잤는데 내가 운전을 하니까 아빠는 안자네 라는 별스럽지도 않은 생각들을 하는 중에 떨어지는 별똥별 헐 아빠 방금 봤어? 봤냐? 와 진짜 컸지 응 진짜 컸어 아빠 얼른 소원빌어 별똥별 떨어질 때 빌었어야 되는거 아니냐? 그래도 빌어 뒤에서 잠을 자던 엄마가 깼는지 무슨 소원? 나도 빌래 결국엔 서영이까지 깨워 다같이 소원을 빌었다 덕분에 시끌벅적 해진 고속도로 위의 sm520v
6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제주도에서 여수로 향하던 중
밤이 어두워져 어떤 섬에 정박하고
짜파게티를 끓여먹어
그릇도 없어서 빨간색 다라이에 덜어 먹었다
사람도 몇 명 안사는 조그만 섬
빛이라고는 작은 요트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주황빛 뿐이라
당연히 별은 많고
찰싹거리는 파도소리와 그에 맞춰 살짝씩 흔들리는 요트 위
처음 마셔보는 위스키
어색한 사이라 할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들
에 대한
기억
7
우도에도 별이 참 많았다
영선이와 나는 매일 밤 각자의 기숙사에서 몰래 나와서 데이트를 했다
우리만 몰래 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주 걸었고 차를 타고 비밀 장소로 가기도 했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밤에
우리는 걷다가 걷다가 그린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입에 물고 근처 놀이터에 있던 벤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영선이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본다
별이 많다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지 아마
간지러운 말들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거기가 그랬다
8
영선인 내가 하자는 걸 다 해준다
벌레도 무서워하고 까탈스러운 영선이가
산속으로 캠핑도 가고 드러누워주기도 하고 그러는건
정말로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큰 맘 먹고 해주는 거란 걸 나는 안다
가을이 올랑 말랑 했던 어느 계절에 놀러갔던 숙소도 산 중턱에 있었다
적당히 술에 취했고
나는 역시나 드러누워
영선아 이리로 와서 누워봐
하면 영선이는 벌레가 있을까봐 걱정은 되지만 내가 누우라니까 눕는다
별이 정말 많아
손을 잡고 한참동안 별을 보다가
추워져서 \
들어가서 만화책을 보면서 고구마를 먹었다
뜨거워서 후후 불면서 먹었다
9 지은이랑 선아랑 현호랑 다같이 손잡고 나가서 별을 봤다 말 똥 냄새는 났지만 별이 많았다 북두칠성이 어딨는지 오리온자리가 어딨는지 그런 얘기들을 했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별똥별은 사실 우주 쓰레기라는 말을 했었던가 다같이 소원을 빌고 누웠다 선아는 잠옷을 입고 누워도 되는 거냐고 자꾸 어쩌구 저쩌구 했고 지은이는 그 날도 배가 고팠고 현호는 지은이한테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의 귀여운 친구들
10 헤어짐은 늘 아쉽다 그래서 자주 취해 있었나 정들었던 솔트를 떠나기 전 어느날 밤 다같이 술을 마셨고 역시나 나는 취했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 선아와 함께 솔트 옥상에 드러누웠다 그 날도 별똥별을 봤다 자주 봐도 소원은 항상 빈다 소원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커다란 달을 봐도 소원을 빌고 해뜨는 걸 보면서도 소원을 빌고 누군가 쌓아올린 돌멩이들을 보며 소원을 빌고 우주의 먼지들이 지구의 대기와 만나 빛을 내는 현상을 보면서도 소원을 빌고 이렇게 소원을 많이 비니까 어떤건 이뤄졌으려나 그 날 밤에 내가 선아의 장갑 한 짝을 옥상에 흘렸고 다음날 그 장갑을 선아가 다시 찾았다
11 나는 이렇게 별똥별을 많이 봤는데 영선인 어제 처음 봤다고 했다 쏟아질 것 같이 많은 별들을 보며 영선인 저 별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별똥별을 보고싶은 친구들을 위해 영선인 자기가 방구를 뀌어주겠다고 했다 방구를 뀌면 별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나는 영선이 방구 정도면 가능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우린 오랫동안 누워있었고 정말로 별똥별이 떨어졌다 술을 마셔서 그랬는지 음악이 좋아서 그랬는지 이 영화같은 상황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처음 만난 친구들과 다같이 누워 별을 보고 차에 밟힐까 걱정을 하고 방구로 별을 떨어뜨리던 이상했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