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렇다고 진짜 죽었으면 하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어렸을 때는 아빠가 진짜로 척척박사인 줄 알았다. 모르는 게 없었고, 뭐든지 잘했다. 산에 가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열매들의 이름을 알려줬고, 강물이 얼면 어디선가 썰매를 만들어와 나와 동생들을 태워 이리 저리 끌고 다녔다. 여름에 계곡에 놀러가면 다이빙도 잘하는 멋진 남자였다. 나는 그런 아빠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 아빠는 실험기구 장사를 한다. 대학교 실험실 같은 곳에 가서 이 실험기구를 써달라고 영업을 해야하는데, 내 생각에 아빠는 영업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아빠가 이렇게 살고 있을 리 없다.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빚에 허덕이며 걱정이 늘어난 아빠는 술독에 빠진 두꺼비처럼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담배를 피웠다. 아빠의 옷에서는 늘 재떨이 냄새가 났다.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하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상한 말들을 했다. 운전을 잘하는 아빠가 버스 기사님이나 택시 기사님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운전을 해야하니까 술도 조금만 마셨을텐데. 어쩌다 실험기구 같은 걸 팔게 되가지고는.
• 아빠의 사무실에 놀러 가면 늘 퀘퀘한 곰팡이 냄새 같은 게 풍겼다. 나는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커다란 테이블에는 비이커나 알코올램프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먼지가 쌓인 커다란 실험용 기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아빠는 이게 뭐하는데 쓰는 건지 아냐며 신나게 설명해 줬다. 너가 커서 화학공학과나 생명공학과에 가면 이 기구들을 다 기증해 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 하며 창고로 쓰던 다락방에 올라가 동생과 빙고 놀이를 했다. 훗날 나는 그 비스무리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지만, 반년 만에 자퇴를 하는 바람에 아빠의 바램을 이뤄줄 수는 없었다.
•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돈을 못 벌지 않았다. 나는 검도와 바둑학원을 다녔고, 논술도 배웠다. 중국집이나 칼국수집에서 외식할 때도 있었고,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자주 여행을 떠났다. 덩치가 산만했던 내 동생은 하루에 계란을 한판씩 먹어 치울 정도였는데, 아빠는 혼자 버는 돈으로 이 모든 걸 해결했다. 어릴 적에는 아빠가 불빛이 나오는 롤러 브레이드를 사주지 않아서, 아이리버 pmp를 사주지 않아서, 아웃백에 데려가주지 않아서 우리 집이 가난한 건 줄 알았다. 부자가 아니라면 다 가난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아빠의 아빠는 냄비 장사를 했다. 아빠와는 다르게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바른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원을 걷고 항상 신문을 읽었다. 아빠랑 비슷했던 건 할아버지도 냄비를 잘 못 팔았다는 것이다. 고모가 성공해서 할아버지에게 집을 사주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캄캄한 반지하 집에 냄비들과 함께 살았다.
• 그렇게 건강하고 바르게 살았던 할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눈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고모들과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아빠만 아무렇지도 않게 밖에 나가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할아버지가 팔지 못한 냄비들은 다 우리집으로 왔다. 커다란 곰탕 냄비부터 1인용 양은 냄비, 계란 말이용 네모 후라이팬, 압력솥 등 수 많은 냄비들을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팔았고, 계란 말이용 네모 후라이팬은 내가 가져왔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회나 슬픔 보다 쌓여있는 냄비들이 더 막막하게 느껴졌던걸까. 집으로 돌아와 네모 후라이팬 위에서 계란을 돌돌 말며, 어쩌면 나도 아빠가 죽으면 울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아직도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알콜 중독에 빠져 제대로 씹지도, 걷지도 못하면서도 병원 조차 가지 않으려 하는 아빠를 볼 때면, 진짜로 아빠가 죽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그 세상에서 아빠처럼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