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한 옛날,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그 애는요. 친구가 인사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 걸어도 얼굴이 빨개지고,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얼굴이 빨개지고, 오줌이 마렵다는 말을 못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하여간 집 밖에서는 늘 엄마 다리 밑에 숨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있었답니다. 얼마나 부끄럼을 많이 탔는지 유치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선생님 쟤는 말도 못 하나 봐요”의 “쟤”로 통했고, 심지어는 선생님이 묻는 말에도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지요. 유치원에서 다 같이 장구를 배우던 날, 선생님은 원생 카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3/24. 오늘은 장구 수업이 있었어요. 열심히 하고 재밌어하는 것 같은데, 연지는 ‘재미있어요’ 하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요. 늘 이야기를 유도해 보지만 예. 아니오. 밖에 해주지 않아서 아쉬워요. 연지가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권유해 주세요.>
유우우우난히 부끄럼을 많이 타던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목소리가 큰 사람으로 자랐으면 했다. 나를 태권도, 검도, 웅변학원같이 활발한 어린이들이 다닐 것 같은 학원에 보내고, 걸스카우트나 해양소년단 같은 모험 활동에 가입시켜 용기 있는 어린이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순 없었다. 아무래도 엄마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웅변 학원에는 내성적인 아이들이 모여 조용하게 앉아있고, 서예 학원에는 외향적인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 다는 걸 말이다. 난 그냥 조그맣고 떨리는 목소리로 웅변을 하는 내성적인 유단자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아 등하교를 같이하던 애가 있었는데, 학교에 가는 내내 나는 그냥 걸었고, 늘 그 애만 떠들어댔다. 어느 날은 그 애도 혼자 말하는 게 지겨워졌는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면서 가자고 했다. 말수는 없어도 노는 건 좋아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학교에 가는 길은 불법 주차된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파른 골목길이었다. 우리는 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다니며 서로의 그림자를 밟았다. 누가 보면 학교에 가고 있는 건지 놀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그림자밟기에 집중했다. 내가 먼저 걔 그림자를 밟으면, 걔가 “아 다시 해 다시!” 했고, 걔가 내 그림자를 밟아도, 걔가 “아싸 이겼다 또 하자” 했다. 그럼 나는 군말 없이 또 했다. 하다 보니까 점점 이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마지막 한 방을 제대로 이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차 사이에 숨어있는 그 애의 그림자를 밟으려 폴짝 뛰… 쾅! 내가 폴짝 뛰어 그림자를 밟으려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그 애가 철푸덕 넘어졌다. 내 발을 피하려고 도망가다가 골목길을 지나던 차에 치인 것이다. 코 앞에서 일어난 사고에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멈춰버렸다. 운전하던 아저씨도 사색이 되어 차에서 내렸다. 거기서 사람이 튀어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조수석에 타있던 아줌마가 차에 내려 울고 있는 그 애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파하며 일어나질 못했다. 나만큼이나 놀란 어른들은 일단 병원에 가야겠다며 그 애를 태워 휭 가버렸다. 나만 그 자리에 두고서. 학교에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1학년 6반 내 자리에 앉아있었고, 우리의 담임 배철용 선생님은 학교에 오지 않은 그 애를 찾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선생님이 그 애가 어딨는지 아는 사람 없냐고 물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혜원이 저랑 같이 학교에 오다가 차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갔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 때문에 그 애가 다쳤다는 게 무서웠다.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떠날 때까지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개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같이 등교했다. 그 애가 깁스를 했기 때문에 내가 걔네 집 앞까지 가서 가방을 들어줬다는 것과, 좁은 골목길이 아닌 큰길을 삥 둘러 학교에 갔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게 다 똑같았다. 그 애는 깁스를 하고도 말이 많았다. 다리만 부러져서 다행이지, 입을 다쳐 말을 못하게 됐더라면 아마 나랑 안 놀아줬을 것이다. 그 애가 이 사고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기를 병원에 데려갔던 아저씨와 아줌마에 대해, 깁스를 해준 의사 선생님에 대해 그리고 입원했을 때 만난 오빠에 대해 떠들어대는 동안 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목발을 짚고 한 발 한 발 힘겹게 걷는 걸 보면, 배꼽 어딘가에서부터 죄책감이 몰려와 온몸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